[정재헌의 판교 '하나되는 집']
길쭉한 필지 두 주인이 한마음… 마당 넓게 공동주택처럼 짓자
凹凸식 '이란성 쌍둥이' 건물, 좁은 공유공지 합치니 큰 마당
건축가 정재헌씨

땅을 밟고 살고 싶어 신도시에 단독주택을 짓는 이들이 늘었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에서 탈피하겠다는 꿈은 쉬이 달성하지만 장밋빛 환상만 있는 건 아니다. 신도시 단독주택지는 보통 땅을 70평(231㎡) 크기로 바둑판식으로 잘라 분양한다. 용적률·건폐율을 최대한 살려 건물을 짓다 보니 집들이 올망졸망 들어서고 정원은 손바닥만 해지기 십상. 경계선 침해 등 이웃과 예상치 못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여기, 머리를 맞대고 신도시의 제한된 땅을 슬기롭게 쓴 이웃이 있다. 건축가 정재헌(49)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해 지난해 판교 신도시 단독주택지 11블록에 들어선 '요철동(凹凸棟)-하나 되는 집'이다.
2007년 판교의 단독주택지 필지를 분양받은 박재홍(53·사업가)씨와 이완규(49·회사원)씨는 판교 단독주택 입주자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내 집을 짓는다는 꿈에 부푼 두 사람은 이웃이 궁금해졌다. 생면부지 두 사람은 '미래의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카페에서 서로를 찾았고 직접 만났다. 집을 공통 화두로 한 중년 남성 둘의 대화는 술술 이어졌다. 둘 다 분양받은 땅이 가로 11m, 세로 21m로 남북으로 길쭉한 형태라 집 짓기가 까다롭다는 고민부터 서로의 집 안이 잘 안 보이게 지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대화 끝에 둘은 모험을 감행키로 했다. "한 건축가에게 같이 설계를 맡겨 공동주택처럼 지어보자."
두 사람의 고민 해결사가 정 교수였다. 9일 두 사람의 집 '요철동'에서 만난 정 교수는 "서로 몰랐던 이웃이 함께 설계 의뢰를 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며 "두 개의 필지(각각 231㎡)를 하나의 땅으로 상정해 놓고 그 위에 두 동의 집을 조화롭게 설계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두 집은 사각의 덩어리를 요철 형태로 두 동으로 자른 다음 대지의 양쪽 끝에 붙인 모양이다. 이가 꼭 맞는 두 조각의 테트리스처럼 두 집이 끼워질 수 있는 형태다. 연면적은 요동(凹棟)이 264㎡, 철동(凸棟)이 278.2㎡. 공사비는 평당 650만원 정도 들었다. 외벽 마감은 목재와 노출 콘크리트를 엇갈리게 적용했다. 마당을 중심으로 요동의 입면이 노출콘크리트면 마주 보는 철동의 입면은 목재, 반대로 요동의 입면이 목재면 마주 보는 철동의 입면은 콘크리트가 되는 식이다. 정 교수는 "이란성 쌍둥이 같은 집"이라 했다. 마치 거울을 통해 자기 집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판교의 요철집. 소유주가 다른 이웃 두 집이 이가 꼭 맞게 끼워지는 테트리스 조각 같은 형태로 설계됐다. 왼쪽이 요동, 오른쪽이 철동. 두 건물 사이가 공유 공지를 합쳐서 만든 마당과 텃밭이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철동의 마당. 정면으로 보이는 집이 요동이다. 대지 경계를 그대로 따랐다면 마당이 현재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사진가 박영채

설계의 핵심은 두 필지에 붙어 있는 '공유 외부 공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었다. 판교 단독주택지에선 법적으로 옆집과의 대지 경계선에서부터 폭 2.5m의 땅을 비워두게 돼 있다. 맞닿아 있는 두 집의 경우 총 폭 5m의 땅이 비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건축가는 두 건축주에게 남북으로 나 있는 법적인 대지경계선을 잊고 이 '공유 공지'를 두 집이 진짜 공유(共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두 동 사이에 끼어 있는 듯한 공유 공지를 두 집의 마당과 텃밭으로 활용했다. 이씨 집인 요동의 데크 앞에 있는 마당은 이씨 집 정원으로, 박씨 집인 철동의 데크 앞에 있는 마당은 박씨 집 정원으로 했다. 마당을 넓게 쓰기 위해 땅을 서로 주고받은 거다. 북쪽 끝 공유지에 만든 텃밭은 둘로 갈라 한쪽은 이씨 집, 한쪽은 박씨 집 텃밭으로 나눴다. 세로로 긴 필지 탓에 옆집과 경계를 허물지 않았다면 이런 정원은 나오지 못했을 거다.
두 집은 단순한 이웃을 넘어 한 가족처럼 됐다. "서울 강남의 아파트에 10년 살았는데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몰랐어요. 지금은 옆집 주인과 형님·아우 하는 사이가 됐답니다. 두 집이 마주 보고 함께 호흡한다는 느낌이 절로 듭니다." '요동 주인' 이씨의 말에 '철동 주인' 박씨가 질세라 화답한다. "한 치 양보 없이 네 것 내 것 딱 잘라 구분하는 세상에서 이런 삶도 있구나 싶어요. 외출할 때 문도 그냥 열어두고 지낸다니까요. 옆집에서 알아서 봐줄 테니까(웃음)." 두 집이 사이좋게 '공유'하고 있는 마당 위로 고추잠자리가 날아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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